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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문헌 목록 〉13. 13世 〉28. <절제공>모의당공휘효원신도비명(慕義堂公諱孝元神道碑銘)
1. 문헌 목록 〉13. 13世 〉30. <태사공>여칙재공휘시헌묘갈(汝則齋公諱時憲墓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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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태사공>절충장군첨지중추부사취죽재공휘난서묘표(折衝將軍僉知中樞府事翠竹齋公諱蘭瑞墓表)
折衝將軍僉知中樞府事翠竹齋公諱蘭瑞墓表 公諱蘭瑞字美草號翠竹行齋玉川人系出高麗檢校大將軍門下侍中諱璋爲肇祖生諱洪珪奉翊大夫版圖判書生諱璵金紫光祿大夫門下平章事諱元琦門下中門祗候奉翊郎諱淵 太宗朝舍人官吏曹判書諱膺號伴鷗亭 世宗朝文科行議政府舍人曾祖諱翼生員祖諱孝男宣傳官嘉善大夫考諱成弼字造汝官直長妣延安金氏公之生卒年月日無傳自幼事親克孝晨昏定省必謹遇新物不先食於父母奉持洞屬務悦親心前後遭艱哀毀踰禮食不近旨服闋常恨貧不能忠養或遇厚味於人家則輒泫然嗚咽而不食雅懷澹洎聲色芬華一切不接於聰明飲食之菲衣服之惡安之若性焉樂於山水春暖秋凉載壼挈朋逍遙徜徉於泉石之間築室爽塏之址樂琴書養性靈悠然有忘世之趣與人交必愼唯諾見善如不及聞惡若不聞處宗族無親疎之別怡怡悦話敦睦之氣自發於座矣公沒葬于南原大山面柑洞后書堂負乾原配淑夫人金海金氏墓祔育三男仁福允福極福孫男元規長房出元生次房出元日季房出嗚呼公可謂純實篤行之士也余感其行治之高潔撮其梗槩俾后之行過者能知好學君子之藏而必式焉 歲在丁未既望 傍裔 敏植 撰 절충장군첨지중추부사취죽재공휘난서묘표(折衝將軍僉知中樞府事翠竹齋公諱蘭瑞墓表) 공의 휘는 란서(蘭瑞)요 자는 미초(美草)며 호는 취죽재고 옥천조씨였다. 고려검교대장군 문하시중 휘 장(璋)을 시조로 생 휘 홍규(洪珪)는 봉익대부판도판서요 생휘 여(璵)는 금자광록대부문하평장사며 휘 원기(元琦)는 문하중문지후 봉익랑이고 휘 연(淵)은 태종조(太宗朝) 사인으로 벼슬이 이조판서요 휘 응(膺)의 호는 반구정인데 세종조(世宗朝) 문과로 의정부 사인을 지냈으며 증조 휘 익(翼)은 생원이고 조휘 효남(孝男)은 선전관 가선대부요 고휘 성필(成弼)은 벼슬이 직장이며 비는 연안김씨(延安金氏)고 공의 생졸년월일은 무전이다. 공이 어려서부터 어버이를 섬기며 능히 효도하야 밤 새벽으로 반드시 바르게 살피며 새 물건을 만나면 먼저 먹지 않고 부모께 드리고 공경하고 삼가하여 어버이 마음을 기쁘게 하였다. 전후상사에 예제를 자나쳐 슬퍼하여 몸을 헐고 맛있는 음식을 먹지 않고 탈상후에 항상 가난하여 풍족하게 봉양 못하였음을 한탄하고 혹 진미를 만나면 눈물을 줄줄 흘리며 먹지 않고 바른 생각이 담박하여 성색분화(聲色芬華)를 一체 가까이 아니하고 박한 음식과 남루한 의복으로써 편안히 한것은 천성이었다. 산수를 좋아하여 따뜻한 봄과 서늘한 가을에 술을 실고 벗을 이끌어 천석(泉石)사이에 노닐고 시원한 터에 집을 지어 거문고와 글을 즐거워하며 성령(性靈)을 길우고 아득히 세상을 잊은 지취가 있었다. 사람과 교제할 때 반드시 허락을 신중하며 착한 것을 보면 목마른 것 같이하고 악한 것을 들으면 귀머거리가 되었다. 종족을 대하면 친불친이 없이 기쁘고 즐겁게 말하니 화목한 기운이 스스로 좌중에 넘치었다. 공이 별세하여 남원 대산면 감동뒤 서당부건원(南原大山面柑洞后書堂負乾原)에 장사하고 배 숙부인 김해김씨를 부장하였다. 남은 인복(仁福) 윤복(允福) 극복(極福)이요 손자 원규(元規)는 장방출이요 원생(元生)은 차방출이며 원일(元日)은 계방(季房)출이었다. 오홉다. 공은 가히 순실독행한 선비라 일컬었다. 내가 그 행기의 고결함을 감동하여 그 대강을 모와 후일 지낸자로 하여금 능히 학문을 좋아한 군자사람의 가성을 알게하여 반드시 구부리게 하노라. 歲在丁未既望 방예(傍裔) 민식(敏植) 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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